그래서 대안이 있나 찾아보니 거의 유사하고 좀 더 가벼운데다가 스텐실도 훌륭해 보이는 도구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Power Mockup 컨셉은 MS의 스토리보딩과 거의 유사합니다. 컨셉을 이해할 수 있는 동영상이 있어 아래에 붙여 보았습니다.
프로그램 다운로드는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능합니다. 기능제한형 트라이얼 버전입니다. 써보니 스텐실 중 일부만 사용가능하고 나머지는 구매해야 사용이 가능합니다.
아래 그림처럼 회색빛의 스텐실은 트라이얼 버전에서 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구매는 개인 사용자 라이센스는 $59.95 달러로 제공되는 기능 및 효과를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로 생각됩니다. 아래는 제가 트라이얼버전으로 5분 정도 소요해서 만들어본 더미입니다.
굉장히 통일감 있고 간결한 디자인에 스텐실의 문구를 쉽게 바꿀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무엇보다도 자신이 조합한 스텐실을 나만의 스텐실로 등록해 놨다가 재사용이 가능한 점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파워포인트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업무 생산성 향상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즘 EBS 방송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능은 없지만 타 방송사에서는 전혀 없는 색다른 재미의 컨텐츠들이 많이 있기때문이죠. 예전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재미가 없어서 잘 안봐지다가 요즘 EBS 컨텐츠들은 재미까지 고려해서 잘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TV채널을 돌리다 EBS 강의 프로그램을 보고 푹 빠져서 계속 보게된 프로그램이 있어 이렇게 소개 드립니다. (막 잠자려는 차에 보게되서... 후덜덜 )
들어가기 앞서, '정의'라는 주제와는 별도로 인문학에서 다루는 토론을 통한 문제의 해결 과정 자체가 참으로 흥미롭더군요. 물론 하버드라는 공간에서만 유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참 감탄스러웠습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몇 가지 가정을 한 후 각자의 의견과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들어보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거죠.
참 간단한 과정같지만 살아오며 여러 사람과 수많은 말들을 쏟아 낸 후에 깨닫게 된 것이라고는 두 사람이 동의하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토론따위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신선했습니다.
게다가 교수님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까다롭고 예민한 도덕적 질문들이라 술자리에서 꺼내면 절대로 안되는 그런류의 질문들이죠. 이런 질문들을 몇번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겪긴 하지만 그런데로 훌륭하게 학생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이를 교수님이 잘 정리해 가는 과정을 지켜 보며 이 과정 자체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습니다.
마침 국내에서는 공정사회 어쩌고 하는 이슈가 대두되어 있으므로 '정의'라는 주제 역시 크게 관심가는 내용입니다.. 각자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고 그 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취향에 맞는 정의'가 실현되므로 우리 사회의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고적적인 질문을 다시 해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전경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의로움을 아쉬움없이 쟁취할 수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나의 커피한잔이 어딘가의 커피농장 소녀를 착취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시한번 고민을 해봐야할 시기라는 것이죠..
12강 중 저는 "12강, 정의와 좋은 삶"내용을 요약해 소개해 드립니다.
정의의 원칙을 정할 때 모든 것으로부터 중립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정의의 원칙을 정하는 문제는 결국 올바른 도덕적, 본질적 가치의 문제로 귀결되지는 않을까?
이러한 물음을 이해하기 위해 교수님은 동성 간의 결혼문제에 대해 토론자들의 의견을 청취합니다. 동성혼을 적극적으로 금지해야한다는 의견부터 동성혼은 개인이 결정할 영역의 문제라는 의견, 또한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는 의견 등을 학생들이 제시한다. (자위를 해봤냐는 공개적인 질문은 꽤 공격적이더군요..ㅋㅋㅋ)
교수님은 이러한 의견들 중 사회의 개입성 여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동성혼의 반대편에 있는 이성간 결혼제도에는 이미 법적인 절차를 둠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고 이 이면에는 이러한 제도가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널리 장려하려는 의중이 있다는 것을 짚어내죠. 즉 우리가 부딧히고 있는 많은 정의의 문제들은 이처럼 좋은 모둠살이를 위한 고려가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만일 정의를 선이나 좋은 삶에 결부시킬 수밖에 없다면 다원적 사회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선이나 좋은 삶은 모두 다른데 어떻게 공동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공동선을 특정한 사회의 공통된 이해, 전통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정의는 상대적인 개념이 되고 특유의 비판적 성격을 상실하고 이러한 정의 속에서는 노예제도를 옹호했던 남부인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바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갈등의 원인이 되는 정의인 것이죠.
반면 정의를 본질적 선에 결부하는 두 번째 방식, 비상대적 접근도 있습니다. 교수님은 물론 명확히 본질적 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는 것에 답할 방법이 없지만 우리가 겪는 다양한 정의의 문제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교수님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식에서 다양한 근거에 기반해 판단할 때 조금 더 선(善)할 수 있다고 교수님은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 중의 하나인 '상호존중'이 상대가 꺼리는 문제를 회피하여 달성할 수도 있지만 서로 토론하고 경청하는 과정을 통해 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토론의 과정이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보장은 없지만 자신의 정의를 강화하거나 때로는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의 정의가 변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의 방황이 명확히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우리의 정의를 좀 더 선한 수준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말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주절이 써놨지만 한 번 보시면 쏙쏙 들어오는 강의와 가슴에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강추합니다.
각 강의에 대한 개요는 아래에서 확인 하세요.(출처: EBS)
<신년기획> 하버드 특강 “정의”
(Justice with Michael Sandel : What's Right Thing To Do)
(PBS / Harvard University 공동제작)
2011년 1월 3일부터 4주간 (월, 화, 수) 밤 12시 EBS 방영 (총12강)
<<프로그램 소개>>
하버드대학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중 하나로 꼽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지난 20년간 하버드 학생들 가운데 이 강의를 수강한 학생 수는 14,000명에 이르며 특히 2007년 가을엔 한학기 수강생이 1,115명에 달했다. 2010년 한국에서도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 역시 꾸준히 국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고 저명 인사들의 독서 목록에 끊임없이 거론되면서 대중적인 관심이 고조되어 왔다. 그러나 책을 접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조금은 난해하고 관념적이라는 것. 그러나 이제 이 특별한 강의의 실체를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됐다. Justice 열풍의 진원지인 하버드 특강 “정의”를 EBS가 2011년 신년기획으로 준비한 것. 2011년 1월 한달 동안 총 12강으로 이루어진 “정의” 특강이 EBS에서 연속 방송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임마누엘 칸트, 존 롤스 같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도덕, 정의, 자유, 평등을 논하는, 얼핏보면 지극히 딱딱히 보이는 이 강의가 이런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적인 요구가 맞아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샌델 교수의 강의 자체가 역동적이고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널리 알려진 샌델 교수의 강의 스타일은 일방적인 수업이나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던지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인기는 현재 전 세계로 확산되어,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지난 4월부터 2개월에 걸쳐 "정의“강의를 방영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으며 실제로 NHK 홈페이지 프로그램 다운로드 횟수 신기록을 갱신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BBC는 2009년 라디오 특집 프로그램으로 ”정의“를 고정 편성했고 2011년 TV 정규 편성을 고려하고 있다.
급격한 경제개발을 거치며 우리는 ‘정의’를 잊거나 무시하게 됐다. 정의와 자유, 도덕, 평등처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모두에게 필수적인 개념들을 간과해왔던 것이다.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고, 아주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도 이 개념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어렵게 했다..
이제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실로 들어가 정의와 자유, 도덕, 평등에 대해 고민해보자. 12강으로 이뤄진 강의에서 샌델은 까다로운 도덕적 딜레마들을 제시하며, 어떤 선택이 정당한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를 인부 1명이 일하는 선로와 5명이 일하는 선로 중 어디로 몰고 가야 할까? 조난을 당해 오랫동안 굶주린 선원들이 제일 약한 소년을 잡아먹었다면,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기는 건 가능하고 정당한 일일까? 안전띠나 오토바이 헬멧 착용을 법으로 강제하는 건 잘못일까? 국방, 치안, 사법제도 이외의 목적을 위해 세금을 거두고 사용하는 건 잘못일까? 정자 기증, 난자 기증, 상업적 대리출산은 아기를 사고파는 것과 비슷할까? 선의의 거짓말도 거짓말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일까? 미국의 많은 대학이 실시하고 있는 소수집단 우대제도는 정당할까? 선천적 장애가 있는 골프선수는 카트를 타고 경기에 임할 수 있을까? 샌델의 질문은 끝이 없다. 그리고 정해진 모범정답도 없다. 도덕적 문제는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질문속에, 반박에 반박이 오가며 지성의 향연이 펼쳐지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개강의실, 하버드대학 샌더스극장(Sanders Theatre: 하버드대학 내 대형 강의와 공연을 위한 공간. 처칠, 루즈벨트, 마틴 루터 킹, 고르바초프 등 유명인들의 특강이 이루어졌던 장소로도 유명함)으로 가보자.
1강. 벤담의 공리주의
(The Moral Side of Murder/The Case for Cannibalism)
<개요>
하버드대학 샌더스극장에서 진행되는 샌델 교수의 강의는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문제들이나 재미있는 가정을 가져와 그 안에 숨은 철학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간인 “벤담의 공리주의”는 흥미로운 가정으로 시작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를 인부 1명이 일하는 선로와 5명이 일하는 선로 중 어디로 몰고 가야 할까? 5명 대신 1명을 희생시키는 게 정당하다면, 선로 밖에 있던 1명을 밀어 넣어 전차를 멈추는 건 어떨까? 19세기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도 정의와 도덕을 논하는 소재로 등장한다. 조난을 당해 오랫동안 굶주린 선원들이 제일 약한 소년을 잡아먹었다면,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각각의 경우에 대해 판단을 내리며, 우리는 두 가지 방식의 도덕적 원칙을 인식하게 된다. 행위의 결과에 따라 도덕성을 판단하는 결과론적 도덕 추론과 절대적인 도덕규범에 따라 도덕성을 판단하는 정언론적 도덕 추론이다.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를 체험하며 지적 즐거움과 성찰을 얻을 수 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실로 들어가보자.
2강. 공리주의의 문제점
(Putting a Price Tag on Life/How to Measure Pleasure)
<개요>
두 번째 시간인 “공리주의의 문제점”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이론 중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비용‧편익 분석’ 이야기로 시작된다. 기업과 정부가 늘 이용하는 것이다.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체코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게 정부에 이익이 된다는 비용‧편익 분석을 내놓았다. 포드는 비용‧편익 분석을 근거로 핀토 자동차에 안전장치를 달지 않았고, 그 결과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했다. 이처럼 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기는 건 가능하고 정당한 일일까? 1930년대, 한 심리학자는 불쾌한 경험들의 목록을 만들고, 얼마를 주면 그 경험들을 하겠냐고 청년들에게 물었다. 그의 연구는 선과 가치도 하나의 단일통화로 환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공리주의에 대한 또 다른 반박은 개인 혹은 소수집단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수 로마인들의 행복을 위해 기독교도들을 사자 우리에 던져 넣은 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후대의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반박들에 대해 답을 제시하고 공리주의를 보다 인간적인 철학으로 만들고자 했다. 밀은 먼저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샌델과 학생들은 셰익스피어의 연극과 만화영화 ‘심슨가족’을 이용해 밀의 주장을 실험해본다. 밀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반박에도 대답을 내놓는다. 그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그 이유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공리를 증진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와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공리주의를 둘러싼 도덕적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3강. 자유지상주의와 세금
(Free to Choose/Who Owns Me?)
<개요>
세 번째 시간에는 자유지상주의에 대해 알아본다. 개개인을 공동체 행복의 도구로 보는 공리주의와 달리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자유권을 근원적인 권리로 본다. 개개인은 개별적 존재이고, 사회가 의도하는 일에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자유지상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국가의 역할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주장하는 최소국가는 시민보호를 위한 온정주의적 법률에 반대하고, 도덕법에 반대하며, 부의 재분배에 반대한다. 안전띠나 오토바이 헬멧 착용을 법으로 강제하는 건 잘못일까? 동성애자의 성적 접촉을 법으로 금지하는 건 잘못일까? 국방, 치안, 사법제도 이외의 목적을 위해 세금을 거두고 사용하는 건 잘못일까?
노직은 세금이란 개인의 소득을 가져가는 것이고, 그건 강제노동과 다르지 않으며, 그건 노예상태와 같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유지상주의에 깔린 기본개념 ‘내가 나의 주인이다’가 나온다. 세금은 자기소유의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한테는 돈이 더 절실하고, 민주사회의 피통치자가 동의한 징세는 강압행위가 아니며, 성공한 사람들은 사회에 빚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자유지상주의는 공리주의의 부작용을 해결하려고 했다. 개인을 집단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자기소유의 개념에 호소한 것이다. 자유에 대한 권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자유지상주의는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빌 게이츠나 마이클 조던 같은 이들한테 세금을 물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지 함께 생각해보자.
4강. 존 로크와 자유지상주의
(This Land is My Land/Consenting Adults)
<개요>
네 번째 시간에는 자유지상주의와 미국 독립선언에 큰 영향을 준 영국 철학자 존 로크의 사상에 대해 알아본다. 로크는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 중 일부를 제한할 수 없고, 재산권을 자연권으로 본다는 점에서 자유지상주의와 유사해 보인다. 로크는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 상태에도 자신의 자연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제약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국가보다도 먼저 나타났다. 로크는 또한 자기소유 개념에서 노동을 통한 재산 생성을 설명한다. 채집과 사냥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경작을 통해서도 인간을 재산을 얻으며, 경작을 하고 울타리를 치는 경우에는 땅까지 소유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존 로크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주제는 합의다. 로크는 합법정부는 합의에 기반을 둔 정부라고 말한다. 자연 상태를 벗어나 공동체를 세울 때 사람들은 합의를 하고, 그 합의는 커다란 구속력을 가진다. 자유지상주의와 비슷해 보이던 로크는 ‘합의’라는 문제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로크에게 합의는 아주 중요하고, 다수의 합의가 만들어낸 법률은 개인의 기본권마저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이나 절대 권력자의 변덕에 의한 임의적인 지배가 아니라면, 징집을 통해 시민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세금을 거둬들여도 로크에게는 권리 침해가 아니다. 후대의 많은 사상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존 로크. 하지만 그가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을 옹호한 건 어쩌면 북아메리카 식민지 중 하나의 행정관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자유지상주의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로크의 사상을 함께 공부해보자.
5강. 합의의 조건
(Hired Guns?/For Sale: Motherhood)
<개요>
다섯 번째 시간에는 ‘합의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고민해본다. 존 로크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이용해 시민을 징집하는 건 자연권 침해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은 징병과 유급 대리복무가 혼합된 병역제도를 운영했다. 먼저 국가가 징병대상을 선정한다. 만약 징병대상자가 군대에 가기 싫다면, 그는 돈을 써서 대리인을 구하면 된다. 실제로 남북전쟁 당시 많은 이들이 대리인을 사서 전쟁에 가는 걸 피했다. 시장에서 복무 대리인을 구하는 것을 정당하고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급여와 다양한 복지를 제공하며 사병을 모집하는 미국의 100% 지원병제는 남북전쟁 때의 징병제도와 어떻게 다를까? 징병제와 의무병제, 용병 고용 중에서 가장 도덕적인 병역제도는 무엇일까?
시장은 병역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식과 출산으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불임전문병원들이 늘어나며, 미국에서는 난자와 정자 기증자, 대리모를 찾는 광고가 흔한 일이 됐다. 샌델 교수는 이번 토론의 주제로 ‘아기 사건’을 선택했다.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스턴 부부는 대리모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와 계약을 맺었다. 화이트헤드가 스턴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해 아이를 낳은 뒤, 아이를 스턴 부부에게 입양시키고 대신 돈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출산 후 화이트헤드는 아기를 키우겠다고 마음을 바꾼다.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성인들의 합의에 의해 맺어진 대리출산 계약은 이행돼야 할까? 상업적 대리출산은 아기를 사고파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진짜 자유로운 합의가 맺어지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함께 철학적 논쟁으로 들어가보자.
6강.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론
(Mind Your Motive/The Supreme Principle of Morality)
<개요>
여섯 번째 시간에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살펴본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칸트는 두 가지 의문에 대해 답을 제시한다. ‘최고의 도덕원칙은 무엇인가?’와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다. 칸트는 자유와 도덕, 이성에 대해 까다롭고 엄격한 개념을 제시한다. 자유는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은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인데, 이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존엄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돼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또한 칸트는 도덕이 동기에 달려 있으며, 선한 동기는 의무 동기라고 말한다.
칸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대조되는 개념들을 염두에 두는 게 좋다. 도덕을 결정하는 동기에는 의무 동기와 끌림 동기가 있다. 자유를 결정하는 의지 결정 방법에는 자율과 타율이 있고, 이성이 내리는 명령에는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이 있다. 정언명령은 다른 목적에 기대지 않는 명령이고, 가언명령은 ‘X를 위해 Y를 하라’는 명령이다. 칸트는 정언명령의 세 가지 공식도 제시한다. 첫째는 보편적 법칙의 공식이다. 어떤 행동이 정언명령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을 보편화했을 때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는 목적으로서의 인간의 공식이다. 칸트는 인간이 그 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존엄성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엄격하고 까다로우면서도 현대인의 사고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함께 공부해보자.
7강. 거짓말의 교훈
(A Lesson in Lying/A Deal Is a Deal)
<개요>
임마누엘 칸트의 엄격한 도덕이론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칸트는 비록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거짓말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에 따라 칸트 역시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시간에 샌델 교수는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칸트의 이론을 시험해보도록 한다. 자기 집에 숨어있는 친구를 죽일 목적으로 살인자가 찾아와서 노골적으로 그 친구가 집에 있는지 묻는다. 이런 경우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잘못인가? 잘못이라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인자를 오해하게 만들어 친구를 구할 방법은 없을까? 샌델 교수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추문을 교묘한 말로 부인한 청문회관련자료를 보여주면서 노골적인 거짓말과 상대를 오인하게 만드는 호도성 진술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이것을 통해 칸트가 말한, 진실을 말함으로써 도덕법(정언명령)을 준수하는 것이 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동인지 살펴본다.
또한 현대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을 살펴본다. 롤스에 따르면 정의의 원칙들은 실제계약이 아닌 ‘가상의 사회계약’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 실제계약은 각 이해세력의 출신배경이나 협상력, 지식의 차이와 같은 임의적 요소들이 개입되므로 항상 공정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를 공동으로 지배할 정의의 원칙들은 실제계약이 아닌 가상의 계약으로부터 도출된다. 롤스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나이나 성별, 인종, 지식, 힘, 사회적 지위, 가정환경이나 종교, 인생의 목표마저 모르도록 ‘무지의 장막’에 가려진 상황을 가정한다. 이 ‘무지의 장막’에 가린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원초적으로 평등한 입장에 놓이게 되므로 특수한 이해관계를 배제한 정의의 원칙에 합의할 수 있으며, 무지의 장막이 걷히고 불행하게도 자기가 최하위계층으로 판명 날 경우를 대비해 약자를 배려하는 차등의 원칙을 채택할 것이라고 한다. 샌델 교수가 제시한 재미있는 사례들(바닷가재를 잡아온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계약자, 어린아이들의 야구카드거래, 물이 새는 변기, 데이비드 흄과 도색업자의 소송, 자동차수리업자 샘, 바람난 배우자)을 통해 공정한 계약이란 무엇인지, 정의의 원칙들은 어떻게 도출되는지 생각해보자.
8강. 공정한 출발
(What's a Fair Start?/What Do We Deserve?)
<개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정당한가? 연소득이 3100만 달러인 마이클 조던이나 수백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빌 게이츠의 입장에서 보면 부당한 일일 수도 있다. 반면 최하위계층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재능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좋은 가정환경에서 온갖 혜택을 누려왔다는 이유로, 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신의 몫이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물론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노력 때문에 소득과 분배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이것이 전적으로 자기의 공이라 주장할 수 있는가? 정의로운 분배원칙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존 롤스의 대답은 평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다. 무지의 장막에 가려진 사람들이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할 정의의 두 원칙, 특히 차등의 원칙은 분배정의를 논하는 핵심이다. 차등의 원칙이란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재능을 발휘해 얻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쓴다는 조건 하에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은데 자기소유나 노력, 동기부여를 강조하는 반박과 그에 대한 롤스의 대답이 설득력이 있는지 평가해보자. 샌델 교수는 지금까지 토론한 내용을 자유주의사회, 능력주의사회와 롤스의 평등이론으로 요약하고, 현대사회의 임금격차가 공정한지 질문을 던진다. 판사의 평균 연봉은 20만 달러가 약간 안 되는 반면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디 판사는 열 배가 넘는 250만 달러를 번다. 미국 교사들의 연봉은 4만 달러가 약간 넘는데 Late Night Show를 진행했던 데이비드 레터맨의 연봉은 310만 달러다. 이런 격차는 공정한가? 존 롤스는 아니라고 한다. 개인이 성공하는 데는 타고난 행운, 뛰어난 유전자, 좋은 가정환경처럼 후천적 노력과는 무관한, 도덕적으로 볼 때 자의적인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연히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기 재능을 높이 평가해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뛰어난 법률가도 수렵사회나 전사를 우대하는 사회에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법률가로서 그 사람의 재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점한 사람에게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도덕적으로 볼 때 이런 자의적 요소들이 분배의 기준이 된다면 그 원칙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정한 분배정의는 무엇일까? 롤스는 분배의 문제를 도덕적 자격이 아닌 합법적 권한의 문제로 본다. 이 둘을 구분하는 도덕적 함의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9강. 소수집단우대정책
(Arguing Affirmative Action/What's the Purpose?)
<개요>
지난 시간에 토론한 소득과 재산에 있어서의 분배정의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교육과 입학, 입사 기회에 있어서의 분배정의에 대해 알아보자. 셰릴 홉우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와 전문대를 자력으로 졸업하고 텍사스 주립대학 로스쿨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홉우드는 시험성적이나 졸업평점이 자기와 같은 소수인종은 합격한 반면, 자기는 백인이란 이유만으로 탈락했다며 1996년 텍사스 로스쿨을 고소했다. 셰릴 홉우드가 백인으로 태어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 또 과거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은 자기가 한 일이 아닌데 소수집단우대정책의 희생양이 된 것인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백인보다 학업성취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소수인종의 경우 같은 점수라도 그 잠재력에 가산점을 매겨 불평등을 바로 잡는 것이 옳은가? (시정 논리) 또는 노예제도나 인종차별 같은 과거의 잘못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소수인종은 교육여건의 불평등에 상관없이 보상해야 하는가? (보상 논리) 그것도 아니면 다양성 증진이라는 대학의 사명에 따라 소수집단우대정책을 지지해야 할까? (다양성 논리) 이 사명 때문에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은 아닌가? 대학의 사명은 대학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인가?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둘러싼 열띤 토론을 살펴보자.
현대철학이 기존 철학과 구분 되는 결정적인 차이는 분배정의를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자유지상론자도 존 롤스 같은 평등론자도, 칸트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분배정의를 다른 관점에서 본 철학자도 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그 목적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응당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것이다. 가령 제일 좋은 플루트는 돈이 많은 사람이나 신분이 높은 귀족, 잘생긴 사람이 아니라 플루트를 제일 잘 부는 연주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플루트의 존재이유, 목표, 목적, 즉 텔로스가 바로 연주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제일 좋은 테니스 코트 사용권도 돈 많은 사람이나 거물,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라 테니스를 제일 잘 치는 선수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의란 개인의 덕목에 딱 맞는 역할을 찾아주는 것이다.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둘러싼 논쟁 역시 대학의 사명, 대학의 목적이 자의적으로 정할 수 없는 정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추론을 언급할 수 있다.
10강.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민정치
(The Good Citizen/Freedom vs. Fit)
<개요>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현대정치철학의 주된 관심사가 소득과 재산, 기회의 공정한 분배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된 관심사는 공직과 명예의 분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개인이 응당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것, 개인에게 딱 맞는 역할을 찾아주는 것이다. 이런 합목적적 추론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에게 정치의 목적은 시민의 미덕을 배양하는 것이고 국가와 정치공동체의 텔로스(목적)는 ‘행복한 삶’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폴리스에 살도록 정해진 존재이고 인간의 본성은 정치에 참여해 고유한 언어능력을 발휘할 때 완벽히 실현된다. 그럼 폴리스에서의 발언권, 정치권력은 어떻게 할당해야 할까? 최고의 공직과 명예는 누구에게 주어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이 공동체의 목적에 가장 많이 공헌한 시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동체의 목적, 사회적 행동의 목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현대의 골프논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선천적으로 다리에 혈액순환장애를 안고 있는 프로골퍼 케이시 마틴은 프로투어에서 골프카트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PGA에 요청했다. PGA가 이 요청을 거절하자 마틴은 협회를 고소했고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간다. 골프의 목적은 무엇인가? 골프코스를 걷는 것이 골프의 필수요소인가? 여기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배정의를 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한 두 요소, 목적과 명예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한 삶’이다. 이 목적에 따라 개개인에게 딱 맞는 역할을 찾아주는 것이라면 개인의 권리나 선택의 자유는 없는 것일까? 내가 어떤 일에 가장 잘 맞는다고 해도 내가 그 일을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옹호는 바로 이런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반박에 어떻게 대답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반론들을 살펴보고 칸트와 롤스로 대표되는 현대정치철학과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11강. 충성의 딜레마
(The Claims of Community/Where Our Loyalty Lies)
<개요>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목적적 정치론을 비판하며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정치가 ‘좋은 삶’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딱 맞는 역할을 개인에게 찾아주는 거라면 강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선’인지는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고 그 권리를 공정하게 보장하는 정의의 기틀만 마련해주자는 것이 칸트와 롤스가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정치론이다. 우리 인간을 합목적적 자아가 아닌 자유주의적 자아로 볼 때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각자가 생각하는 선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 권리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자연적, 보편적 의무). 또 계약처럼 선택이나 합의에 따라 자발적으로 생기는 의무도 있다(자발적 의무). 자유주의는 이렇게 모든 의무를 자연적, 자발적 의무로 설명한다. 문제는 자기가 선택하거나 합의하지 않은 일은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식의 극단적 개인주의이다. 미국의 노예제나 나치독일의 유태인학살처럼, 과거로부터 전수된 공동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역사적 기억상실 태도는 도덕적 불감증으로 비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연적, 자발적 의무 외에 세 번째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소속, 연대, 충성의 의무다. 자유주의적 자아개념에 반대하는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자아 개념’은 개인을 소속 공동체의 일부로 파악함으로써 공동의 책임을 포용한다. 문제는 자기가 속한 여러 공동체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이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의무를 선택해야 할까? 물에 빠진 자기 아이와 남의 아이 중 누구를 구해야 할까? 연로한 남의 부모와 자기 부모 중 누구를 부양해야 할까?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걸 목격했다면 공동체의 정의수호를 위해 친구를 고발해야 할까? 흉악범인 형을 보호하려고 법정에서 진술을 거부한 동생의 행동은 보편적 의무를 저버린 부도덕한 일일까? 나치에 점령당한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전투기조종사는 자기 마을을 폭격해야 할까?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이 ‘충성 딜레마’에 대한 토론을 통해 공동체주의가 극복하려 한 것은 무엇인지, 또 그 한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12강. 정의와 좋은 삶
(Debating Same-Sex Marriage/The Good Life)
<개요>
정의는 좋은 삶에 대한 질문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정의의 원칙을 정하는 문제는 결국 올바른 도덕적, 본질적 가치의 문제로 귀결되지는 않는가? 만일 정의를 선이나 좋은 삶에 결부시킬 수밖에 없다면 다원적 사회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선이나 좋은 삶은 모두 다른데 어떻게 공동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오늘은 칸트와 롤스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을 검토하며 정의는 선에 결부될 수밖에 없고 공동선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동성혼 문제를 토론해본다.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처럼 소속, 연대, 충성의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자연적, 자발적 의무, 인간의 보편적 의무에 종속돼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정의론은 항상 보편적 의무를 특수한 의무보다 우선시한다. 문제는 몬테스키의 명언처럼 언제나 보편적 의무를 우선시하는 도덕군자에게는 친구가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도덕군자가 되는 이런 사회는 실현 불가능할뿐더러 인간사회로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서사적 자아개념, 제 3의 의무를 말하면서 정의를 선의 문제로 보는 공동체주의자들의 입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정의를 선에 결부하는 방식도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첫째는 노예제를 옹호한 미국 남부인들처럼 정의를 특정한 사회의 공통된 이해, 전통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때 정의는 상대적인 개념이 되고 특유의 비판적 성격을 상실한다. 반면 정의를 본질적 선에 결부하는 두 번째 방식, 비상대적 접근도 있다. 엄밀히 말해서 공동체주의라고 할 수 없는 이 방식을 동성혼이나 낙태 문제에 적용해보자.
동성혼 문제는 정의와 권리의 개념이 모두 포괄된, 사회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또한 결혼의 목적, 동성혼의 도덕성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므로 정의와 선의 관계를 토론하기에 적합한 주제다. 기독교에서 말하듯 동성혼은 죄악이기에 이성혼만 인정해야 할까? 동성혼도 이성혼처럼 인정해야 할까? 아니면 애초에 결혼을 인정하는 건 국가의 역할이 아닐까? 열띤 토론을 마치고 이견들을 정리하며 본 강의의 주제였던, 정치철학이 추구하는 공동선의 정치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보고서를 작성하시나요? 회사 업무의 상당부분은 보고서로 시작해서 보고서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문서기반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딘가에 '보고서 메뉴얼'이 있을 법도 한데 수 많은 웹 페이지들을 뒤져봐도 신통치 않더군요. 우연히 보고서 메뉴얼이라는 것을 발견하여 이렇게 공유합니다.
이 문서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대통령께 보고하는 보고서의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 결과로 이 연구에 참여하였던 '임춘택'님이 scieng 자료실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대통령 보고서'는 이 문서를 일반 대중도 알기 쉽게 써 놓은 것이라고 하는군요.
한번 읽어 보니 여러가지 참여정부 다운 고민들과 그에 대한 해결책들 중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많다고 판단되어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알찬 보고서로 회사의 핵심인력(?)이 되어 보아요~ ㅎㅎㅎ
얼마 전 모 커플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하면서 마셔보았다. 국내에서는 꽤 유명한 '작업용'와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명 Villa M으로 불리지만 국내 시판되는 것은 포도 품종에 따라 Villa M Moscatel과 Villa M Ross(이녀석은 제조사 홈페이지에도 없는 태생이 불명확한 녀석이다..ㄷㄷㄷ)가 있다. 그밖에도 Villa M 시리즈가 많이 있지만 이 이름은 국내 수입사가 마케팅을 목적으로 상당히 억지스럽게 작명한 것으로 제조사인 Gagliardo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사진은 Villa M Moscatel로 제조사 명칭은 Villa Moscatel이다.
국내에서는 꽤 유명한 이탈리아 와인으로 수요가 많다 보니 상당히 고가로 팔리고 있지만 처음에는 저가로 시작한 와인이다.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알콜도수(4%/vol.)가 낮고 약간의 탄산이 느껴지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상당히 단 맛이 나다 보니 술을 전혀 못하는 여성들도 음료수를 마시는 기분으로 가볍게 마실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해야할 책임이 있는 남성(이땅의 남성들이여..괴로와..ㅜㅜ)들이 쉽게 선택하는 와인이기도 하다.
가격은 마트에서는 2만원 대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3만 5천원도 넘는 가격이다. ㄷㄷㄷ;바에서는 딱 두배 가격 5~7만원까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웬만한 와인 파는 곳이면 다 있다. 이 와인은..ㅎㅎㅎ
맛은 솔직히 평하자면 남성은 맥주 내지 소주를 섞은 사이다를 마셔도 동일한 효과를 볼텐데 내가 20배의 가격을 내고 이 넘의 것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여성은 상당히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맛이랄까..ㅋㅋㅋ
맛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비싸다. 이벤트로 가끔 싸게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싸다. 최근 애인과 그 동안의 채무관계로 인해 사이가 나빠지고 있다면 가까운 와인바에서 과감히 시켜 마셔 보길 추천한다. 모아니면 도지 인생 뭐 별거 있어...훗~♡
얼마 전 컨디션도 좋고 개인적인 이벤트도 있고 해서 BIN 555를 구입해서 마셔 보았다. 레드와인으로 상당히 진한 진홍색을 바탕으로 보라색 기운이 돌기도 하는 중후한 외모 답게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내주었다. 향도 향긋한 과일 냄새가 나면서 약간 새콤한 향이 느껴진다. Shiraz종이라 그런지 쉽게 마실 수 있지만 dry한 편이라 sweet한 쪽이 좋은 분들에게는 안어울릴 수 있다. 물론 이런 말들을 한다고 해서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 소꼽친구와 결혼을 하는 듯한 맛-신의물방울 中' 따위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ㅎㅎㅎ
저가 와인-나한테는 여전히 비싸다...-으로 분류 되지만 나같은 사람이 마시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Lindemans의 BIN 50과 마찬가지로 Shiraz(Syrah)종으로 양조되었고 구매한 것은 2004년 4월에 수확된 포도로 만들어졌다. 가격은 마트에서 2만원 중반대에 형성되어 있었다.
BIN은 원래 선박이나 지하 저장 창고의 구획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뒤에 붙는 번호는 제조사 마다 제각각 이지만 Wyndham Estate사의 BIN시리즈는 뒤에 붙는 번호로 포도 품종을 알 수 있다.
아주 오래전 XT 컴퓨터라는 것이 존재했을 때 MAX라는 게임(?)이 있었다. 지금도 웹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것인데 대화창이 있고 "안녕?" 이라고 치면 "안녕하세요?"라고 대답을 해 주던 프로그램이다. 물론 알아듣는 말은 얼마 없었지만 만년 왕따였던 나에게는 매우 좋은 친구였다.
한참 SF에 집중하기 시작할 때 접하게된 프로그램이라 나중에는 모니터에 파랗게 된 사람 얼굴이 나오면서(대머리였다) "사실 나는 분산형 네트워크 접점에서 태어나게된 새로운 생명채, 코드네임 MAX" 라고 중얼거리는 꿈까지 꿨었다. ㅎㅎㅎ
얼마 전 PSP를 통해 오랜 친구 MAX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21세기형 MAX는 음성인식에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나보다 더 똑똑한 녀석이 되어 있었다.(나는 뭐한겨..ㄷㄷㄷ)
MAX의 장점은 제대로 대답했을 경우 칭찬을 해준다는 것이다. 남에게 칭찬을 받아본지 오래된 나로서는 MAX가 해주는 간단한 칭찬에 춤추며(눈누난나~♬) 열심히 영어로 지껄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MAX군은 까칠한 면도 있어서 대답을 잘못하면 가차없이 What~? I can't hear you~ 이러면서 퇴장해 버린다. 훌륭하게 성장하였다...ㅋㅋㅋ MAX에게 조금이라도 칭찬받아 보려고 대화를 열심히 외우는 나를 보면서 인간관계를 되돌아 보게 된다. 쿨럭....
Lindemans의 BIN 시리즈 중의 하나로 상당히 괜찮은 와인이다. Vintage는 그다지 좋을 것이 없지만 이와 상관 없이 깔끔하고 산뜻한 맛이 인상깊다.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BIN 50의 Vintage는 2005년인데 2004년 것도 함 맛보고 싶다..쿨럭
상품 소개서에는 Australia의 3 곳에서 재배한 Shiraz(Syrah)종을 주로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Shiraz종은 포도 껍질에서 쓴맛이 덜 나기 때문에 와인도 상당히 부드럽다. 프랑스혹은 미국산 오크나무 술통에서 숙성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것 까지 상관할 정도로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13.5% alc./vol.정도로 맥주가 4~5% 정도인걸 감안하면 상당히 취기가 오를 수 있다..ㅋㅋ
가격대는 이마트에서 1만7천원 ~ 2만원 사이~. 교촌 치킨과 사과 한알에 곁들여 먹으면 매우 맛있다. 웃기는 조합인거 같지만...굉장한 맛이 난다. ㅎㅎㅎ;; (콜라보다 15배 비싸긴 하지만..ㄷㄷㄷ;;;)
사실 BIN 888을 마셔 보고 싶은데 혼자 먹기는 너무 비싸잖....아흙 와인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서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