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10. 10:29

추천 소설-인간 실격(다자이 오사무, 김춘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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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세계문학전집 103)    
저자 다자이 오사무 | 역자 김춘미 | 출판사 민음사



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취약한 존재라고 믿는다. 어이없이 죽어버리기도 하고 쓸데없는일에 중독되거나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타인 혹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약한 존재인 것이다. 3일을 굶으면 어린아이의 손에 든 것을 당연하게 빼앗고 목에 칼날이 들이밀어지면 주저없이 바지춤을 푸는 그런 존재...

이렇게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도덕과 종교와 규범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적당히 감추도록 교육받고 훈련하면서 우리는 거대한 모듬살이를 실현하였다. 이러한 훈련은 타인뿐만 아니라 토악질 나는 자신의 모습으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쌓아올린 거대하고 딱딱한 내면의 벽은 때로는 순수한 자신에게로의 길까지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해 "나는 무엇인가?" 따위의 고전적 자기모색에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살아가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우울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보는 대신 '요조'라는 주인공의 내면을 아무런 가식적인 장치 없이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 것으로 부터 묘한 감동을 이끌어 낸다. '요조'의 '순수'에 대한 지향에 공감을 보내고 그의 좌절과 '인간실격'의 과정에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요조'라는 지극히 소심하고 예민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지독한 공포'를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이 평생을 '순수함'만을 갈망하다 폐인이 되어 죽어버리는 내용이 수기처럼 작성되어 있다. '무서운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요조'가 택한 도구는 '익살꾼의 연기'-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닌가?- 이다.

이야기는 '요조'의 유서와 같은 수기를 발견한 '나'라는 화자가 작성한 서문과 후기, 그리고 '요조'의 수기로 구성된 소설이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평생의 행적이 비추어 봤을 때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소설의 뛰어나고 독특한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렇게 우울한 소설이 일본의 전후문학이라는 것에 약간 놀랐다. 좌절과 상실감을 한 인간의 문제로 국한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가해자'라는 위치와 '패전'이라는 묘한 결말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의식과 상실감은 '피해자'인 우리가 공감하기에는 약간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이러한 주제의식은 국내 전후 문학인 '오발탄(이범선, 1959)'과 그 맥락이 유사하다고 생각해 볼 때 더욱 흥미롭다. 가해자건 피해자건 전쟁이 인간 상실의 장이라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도덕적인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가해자'의 '상실감'이란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이러한 문화를 생산해 내고 이를 자양분 삼아 살아온 일본인들이 느끼는 전쟁에 대한 인식이 지금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반딧불의 묘(다카하타 이사오, 1998)'를 볼 때도 느껴졌던 왠지 모를 불편함이 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편협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궁금할 뿐이다. 그들의 생각과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