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7.11.16 추천 소설-위대한 왕(니콜라이 바이코프, 김소라, 아모르문디)
  2. 2007.08.09 추천 소설-뉴욕 3부작(폴 오스터, 황보석, 열린책들) 1
  3. 2007.06.19 추천 소설-시계태엽 오렌지(앤서니 버지스, 박시영, 민음사) 3
  4. 2007.05.31 추천 소설-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Mark Haddon, Vintage)
  5. 2007.05.21 추천 소설-파일럿 피쉬, 아디안텀 블루(오사키 요시오, 김해용, 황매)
  6. 2007.05.16 추천 소설-농담(밀란 쿤데라, 방미경, 민음사)
  7. 2007.05.15 추천 소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 권미선, 민음사)
  8. 2007.04.23 추천 소설-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김난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55) 3
  9. 2007.04.18 추천 소설-오 하느님(조정래, 문학동네)
  10. 2007.04.06 추천 소설-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공경희, 민음사) 2
2007. 11. 16. 09:00

추천 소설-위대한 왕(니콜라이 바이코프, 김소라, 아모르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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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왕 - 만주의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의 일생
저자 니콜라이 바이코프 | 역자 김소라 | 출판사 아모르문디


나는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21세기 민주 공화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왕의 귀환따위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다.(대한 민국 대선 정국을 보노라면 분명 왕을 선출하는 행위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하지만 모든 남자 얘들이 그렇듯 위대한 왕의 이야기에는 열광하고 그들을 흠모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ㅎㅎㅎ

이 책은 만주의 넓고 울창한 밀림 '타이가'를 지배하였던 위대한 호랑이의 이야기이다. 왕의 범상치 않은 탄생(무려 백두산 호랑이의 후손이십니다..ㄷㄷㄷ)과 고난을 겪는 성장, 구성원들의 구심점이 되어 인간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여느 영웅 대서사시와 다를바 없지만 30여년을 만주 밀림의 동식물을 관찰하고 토착민과 교류하면서 살아온 작가의 이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은 위대한 왕의 이야기를 더욱 찰지게 만든다.

모든 위대한 것들이 그렇듯 이 작품은 뛰어난 디테일들이 차곡 차곡 쌓여있는 보석상자 같은 이야기이다. 작가의 오랜 기간에 걸친 세밀한 관찰에서 나오는 호랑이의 생활은 너무나 생생해서 우리는 쉽게 호랑이에게 몰입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호랑이가 버터를 바른 비스킷을 깨물어 먹듯 맷돼지의 허벅다리살을 먹는 장면에서는 식욕이 생기고 인간들이 철도를 놓아 밀림을 파괴할 때는 까닭모를 분노가 생긴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반려자를 덫으로 죽인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먹어버리는 장면에서도 그다지 거부감이 안생긴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그린 멋진 삽화들이 드문 드문 포함되어 있어 우리의 상상력에 힘을 더한다.

번역도 깔끔하고 이야기도 재미있다. 위대한 왕의 이야기로서 부족함이 없다. 좋은 책이다.

 

2007. 8. 9. 09:15

추천 소설-뉴욕 3부작(폴 오스터, 황보석,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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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페이퍼북) | MR KNOW 세계문학 17 
저자 폴 오스터 | 역자 황보석 | 출판사 열린책들 


나의 건조한 삶 속에서 활자들로 빼곡한 '책'이란 것이 없었으면 아마 나는 지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스스로에게 견디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는게 맞을거다. 어쨋든 수만개의 글자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읽으며 삶의 공백을 메우다 보면 참을 수 없이 외로워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못 먹는 쓴 술을 천천히 마셔보는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나에게 이러한 도시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다.

책은 3가지 중편 소설(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로 엮여 있고 추리소설의 장르적 형식을 취하는 한다. 갑작이 일어난 이벤트에 범인과 그를 쫓는 형사가 등장하고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갖가지 복선과 케릭터들이 등장하지만 통속적이어서 재미있는 다른 추리소설들과는 주제면에서 그 격을 달리 한다.(많은 추리 소설 애호가 들이 소리 높여 주장하는 추리소설의 '문학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ㅎㅎ)

3가지 이야기는 모두 '관찰'과 '기록'이라는 행위가 서술의 원동력으로 누군가를 쫓는 탐정은 조용히 누군가를 지켜보고 노트에 그의 사소한 일상들을 기록해 간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일련의 행위에 대한 목적의식이 점차 없어지고 행위 자체에 얽메이는 자신을 깨닫게 되다가 정체성에 혼란마저 느끼게 된다. "나의 행위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으며 행위의 대상인 저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탐정이 관찰자의 위치를 버리고 관찰대상에게 과감히 접촉하는 순간 대상은 사라지고 탐정만이 남게 되면서 다음 이야기로 슬며시 이어진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관찰'과 '기록'은 이이야기를 창조해 가는 작가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탐정의 행동을 관찰하고 또 그 행동들을 기록해 가면서 작가는 주인공과 동일한 갈등의 구조에 빠져드는 것이다. 참 기가막힌 구성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모두 뉴욕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의 기술은 상당히 도회적인 감성이 물씬 풍겨난다. 번역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힘들고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가 단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단숨에 읽혀지지는 않는다. 아니 읽는 행위에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

하루키씨의 건조한 문체에 매력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폴오스터의 소설 모두를 추천한다. (그도 매우 좋아하는 작가라고 한다.)
2007. 6. 19. 16:19

추천 소설-시계태엽 오렌지(앤서니 버지스, 박시영,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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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세계문학전집 112) 
저자 앤서니 버지스 | 역자 박시영 | 출판사 민음사  



생각 거리가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었던 '지하 생활자의 수기(도스토예프스키, 이동현, 문예)'를 읽고 바로 '파리대왕(윌리엄 골딩, 유종호, 민음사)'을 읽던 도중 세심하지 못한 번역에 짜증이 왈칵 밀려와-분명 번역보다는 나의 난독증이 문제임에 틀림 없지만-한 동안 번역책들을 멀리 하고 있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몇 번 더 읽어볼 생각이지만 '파리대왕'은 개정판을 기다려 보련다.) 작은 생채기들로 엉클어진 마음을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피천득, 샘터)'에 나오는 따뜻한 글들로 재빨리 달래본 후 다시 잡게된 책이다.

이야기는 '강함'을 모럴(morals)로 생각하는 15세의 알렉스라는 소년이 더 '강한' 사회체제와 이를 유지하는 자들에게 '희생'당하는 내용이 강렬한 사건들이 연속되면서 진행된다.

초반 알렉스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알렉스 무리(알렉스, 피트, 조지, 딤)가 벌이는 거대한 폭력과 악날한 범행 장면은 작가가 1962년 이 작품을 발표하고 상당한 비난을 받게되었던 빌미가 되었다. 나 역시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나도 제법 '정상인'이라구~ ㅎㅎ) 도대체 작가는 이녀석을 가지고 어떻게 결말을 낼지 전반부를 읽는 내내 궁금했다.

그러나 알렉스가 교도소로 들어가고 루도비코 요법을 받게 되는 후반, 고통받는 알렉스를 보면서 헐리우드 악당들이 좌절-악당들이 '좌절'하는 것은 조금 좋아(* ′∀`) 한다는...-당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통쾌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알렉스 스스로 뉘우친다거나 후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강렬한 폭력으로 '수정'해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 속은 여전히 추악한 감정들로 들끓지만 '수정'된 육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악(惡)'을 '거세'당한 알렉스보다 순수하게 자신의 '추악함'을 추구했던 전반부의 알렉스가 오히려 '인간'다워 보일 지경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정치적인 협작과 복수, 다양한 종류의 폭력, 사회 체제의 허구성 등을 암시하는 이벤트들이 계속되다가 상당히 뜬금없는 결말을 맞는다.(내게는 엉뚱하게 느껴졌다.)

순수하게 엔지니어적인 관점에서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단기적인 '가격대 성능비'가 좋다고 하더라도 '상호 양해'를 거대한 모듬살이의 기본적인 '약속'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나같이 건전한(워~~(´ д`)거기 돌은 내려 놓고 얘기하자고...) 사람들에게 '폭력'은 최종의 친선 수단으로 남겨두고 싶다.

요즘 같이 흉흉한 시대에 추악한 범죄 소식과 그 소식에 반응하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도대체 수 백만년 전에 불쑥 나타나 옹기종기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친 인류가 또 다른 상부 구조-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게 있다고 믿는다-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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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스탠리큐브릭 감독의 동명의 걸작 영화가 있다고 하니 주말에는 이 영화나 감상해 봐야 겠다.

2007. 5. 31. 09:55

추천 소설-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Mark Haddon, Vin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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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Paperback]
저자 Haddon, Mark | 출판사 Vintage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 가 있다.

왜 사람들은 마음속 진심을 말하지 않는가? 왜 진심이 아닌 말들을 그렇게나 많이 하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고 빛, 소리, 냄새, 촉각 그리고 미각 같은 혼란스러운 감각들을 참아낼 수 있는지? 왜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는지? 왜 사람들은 그토록 복잡한 감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회적 신호들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을 다 이해하는지? 왜 그렇게 흥미 진진한 기차 시간표, 우주 속의 별 들의 운행 경로, 소수, 증명 등에 사람들은 그렇게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는지...(마지막은 거짓말~ㅎㅎ)

물론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이 책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와 같이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잘 이해할 수 는 없지만 자신의 세계는 확고하고 그 세계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주인공인 크리스토퍼의 이야기 이다.

크리스토퍼는 세계의 모든 수도 이름을 알고 있으며 소수(Prime Number)를 7,057까지 외우고 있다. 귀여운 애완용 쥐를(ㄷㄷㄷ...) 기르고 개를 좋아 하지만 타인이 자신에게 접촉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싫은일이 있으면 소리를 지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때리거나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휘두르기도 하지만 그 것은 험난한 정글과 같은 사회속에서 그가 가지는 작은 발톱같은 것이다.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어느날 크리스토퍼는 건너집 앞마당에서 정원용 갈퀴 같은 것에 찔려 죽어 있는 Wellington을 발견하고 범인을 잡기로 결심한다. Wellington은 건너집 애완견으로 개를 좋아하는 크리스토퍼는 열심히 조사를 시작한다. 여러 가지 사건과 진실이 밝혀지고 결론은 점차 수학의 증명 문제로 흘러가게 되는데...(잉?)

크리스토퍼의 독특한 시선과 논리적인 문체가 이 책의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 준다. 소설 속에서 메타포나 복선따위는 배제한다고 작가님이 친히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원서를 읽게 되었을 때 생기는 의미의 혼란도 없다. 또한 어려운 수학, 물리, 천문학-다시말하지만 이건 소설이다..ㅎㅎ-을 설명할 때는 친절하게 그림과 도표까지 곁들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쉽다. 영문에서 익히 알려진 반복된 단어의 치환이나 생략이라든가 주어의 생략 같은 것은 우리 크리스토퍼에게 용납되지 않는다.(그래서 읽다보면 가끔 답답하기도 하지만..)

단어도 쉽고 문장도 명쾌해서 쉽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꽤 오래 걸린 것 같다.... -   _-;;;;;;;
무려 십수년의 영어 공부의 무상함이여~ 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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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21. 15:55

추천 소설-파일럿 피쉬, 아디안텀 블루(오사키 요시오, 김해용, 황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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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쉬                          아디안텀 블루  
저자 오사키 요시오,               저자 오사키 요시오,
역자 김해용,                         역자 김해용,
출판사 황매                          출판사 황매

근래 너무 어두운 이야기들만을 골라 읽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좀 밝은 연애 소설-곰곰히 생각해 보면 연애 소설이 밝은 것일리 없다. 밝으면 이야기가 안되잖아.- 을 찾다가 주문하게 되었다. 표지부터 봄날의 복슬복슬한 새끼곰이 아장아장 걸어와 "이제부터 나와 하루종일 뒹굴기 놀이 하지 않을래요?" 라고 물어볼 것 같지 아니한가? 주인공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설정이 이어진다는 소개에 두 권을 한꺼번에 주문해 버렸다.

이야기는 매우 감각적인 연애 이야기로 무라카미 하루키씨(이하 하루키)의 '상실' 시리즈와 그 맥이 닿아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하루키의 건조한 농담 대신에 모던한 아이콘-파일럿 피쉬, 어항, 화초-을 사용한다거나 과격한 배경 설정-SM 여배우, 에로잡지 편집장, '발기시켜 팔아먹기' 사훈 따위-은 좀 더 섬세한 가벼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8살의 나이 차이가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무라카미 하루키씨와 오사키 요시오씨의 나이차이는 프로필상 8살 차이다. 하루키씨가 1949년생 아저씨라는거..ㅜㅜ)

파일럿 피쉬는 어항 속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박테리아 수와 수온 등을 적절히 맞추는데 이용되다 환경이 조성되면 비싼 열대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버려지는 싸구려 물고기다.-이 세상은 이만큼의 계급 체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것이다.- 아디안텀 블루는 허브과 식물로 잎이 토끼풀처럼 생긴 고란초과 식물이라고 한다. 아마 다른 허브들과 비슷하게 물 조절을 조금 잘못하면 말라버리거나 시들어 버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두 가지의 메타포는 젊어서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사랑을 흐릿흐릿하게 비춰준다.

범람하는 하루키의 글들 중에 쓸만한 것들에 목메이면서 기다리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바나나와 같은 작가들에게 기웃거려 본 사람이라면 추천할 만 하다. 가볍지만 나름대로의 선을 가지고 있고 하루키의 상실감과는 느낌은 비슷 하지만 표현은 좀 더 섬세하고 아름답다.

2007. 5. 16. 15:55

추천 소설-농담(밀란 쿤데라, 방미경,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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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세계문학전집 29) 
저자 밀란 쿤데라 | 역자 방미경 | 출판사 민음사


나에게는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마찬가지로 소위 '386'세대라고 부르는 세대들이 가졌던 묘한 '희망'에 대한 동경도 가지고 있다.-두 가지 모두 교육된 것이라고 믿지만 어쨋든 내 안에는 그런 것이 있다.- 다행히 노력한다면 여러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안도하면서 느긋히 이런 소설을 통해 막연한 공포와 동경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시간을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의 저자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으로 '농담'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 닫혀진 이념 사회가 한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멸시키는 과정이 극적으로 적혀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비극은 주인공의 20여년의 동안 철통같이 믿고 신봉하던 신념과 체제로 부터 완전히 배제되고 결국 인생 전체를 '실패'로 채색하게 되는 발단은 3줄의 농담이 적힌 엽서라는 것이다.

책은 7장으로 나뉘어 화자가 바뀌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입장의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해 여러 가지 사건이 계속 재해석 된다. 루드빅은 젊은날 자신의 사소한 농담을 빌미삼아 자신을 파멸에 빠뜨렸던 파벨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인 헬레나를 꼬셔내지만-유치하다.- 헬레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그녀 역시 유치한 이유로 사랑에 빠진다.- 게다가 파벨-이놈은 나와 같은 천성적인 기회주의자다. 더럽게 약한놈이다.-은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면서 복수는 더욱 이상하게 돌아간다. 또 다른 종교라는 이념에 사로잡힌 케릭터인 코스트카의 입을 통해서는 루드빅이 절망의 순간에서 보았던 한 줄기 희망이었던 루치에와의 사랑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거대한 폭력이었음을 읇어준다.  또한 자신이 유일하게 애정을-민속음악에 대한 그의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보내는 오랜 친구인 야로 슬라브는 마지막에 루드빅의 품에 안겨 죽는다. 길다랗고 우울한 한 인간에 대한 실패의 서사시가 담담히 읇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 무겁고 우울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루드빅과 루치에의 사랑이야기나 헬레나의 우스꽝스런 자살 소동이나 민속음악에 대한 애정 등이 묘사되는 걸 보면 묘한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란 것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뿔이 달리거나 빨간 옷을 입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TV를 통해 알게 됬지만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이 안된다. 누군가 내 머리 속에서 셔터를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지란 참 강력하면서 우울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7. 5. 15. 09:20

추천 소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 권미선,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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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세계문학전집108)  
저자 라우라 에스키벨 | 역자 권미선 | 출판사 민음사 



나는 소설 속에 나타나는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묘사를 매우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아리랑(조정래, 해냄, 1994)'에서 한겨울 땅 속의 장독에서 꺼낸 살짝 얼은 김장 김치를 쭉쭉 찢어 막걸리와 함께 먹는 장면이나 따뜻한 봄날 밭일을 하다 새참으로 가지고 나온 풋고추에 된장을 듬뿍 찍어 먹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참을 수 없는 식욕에 허덕이며 책을 읽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멕시코의 독특한 소설로 요리 과정을 이야기 중심에 배치하여 흐름을 주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녹아들어가기도 하면서 사건을 진행한다. 주인공인 티타는 완고한 어머니의 '막내딸은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묘한 전통에 따라 사랑하는 페드로와 결혼하지 못하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을 유일하게 위안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책은 12개의 장으로 나뉘어 각 장마나 멕시코 전통 요리 과정을 소개하면서 티타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멕시코의 문화를 드문 드문 접하게 될 때마다 묘하게 우리나라의 정서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은 아름답고 순수한 타타만의 세상과 추악하고 폭력적인 어머니의 현실 세계가 공존하는 구도를 취한다. 그래서 위트있고 즐거운 묘사가 진행되다 불의의 일격과 같이 배신, 강간, 살인 등의 이벤트가 튀어나오기도 해 티타와 어머니의 대립구도에 힘을 더한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는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중간 중간 요리이야기로 쉽고 재미있게 읽혀지는 책이었다. 그러나 리타의 일관된 수동성과 경험하지 못한 요리에 대한 상상력 부족으로 이야기에 푹 빠지면서 읽지는 못했다. 또한 리타라는 여성이 가지는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그런 날이 올지 지극히 의심스럽지만-입체적인지 평면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페드로와 로사우라, 어머니의 케릭터에도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독특하기는 했지만 내게 요리 이야기가 중심이된 소설에 품었던 희망에는 조금 부족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2007. 4. 23. 11:50

추천 소설-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김난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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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세계문학전집 55) 
저자 아베 코보 | 역자 김난주 | 출판사 민음사


이렇게 잘 쓰여진 소설을 만나게 되면 역시 읽어버릴 활자가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 하면서 읽게 된다. 잘 짜여진 갈등과 갈등을 폭발 시키는 배경, 추악하면서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라는 장르의 매력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야기 때문에 수 많은 쓴 맛을 감내하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얽메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평범한 주인공이 묘한 사구 마을에 강금당하다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노력하는 내용이다. 이야기에 힘을 더하는 너무도 생생한 상징들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단숨에 작가가 설정해 놓은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있다. 이러한 진행 방식은 카프카의 소설과 상당히 닮아있지만 비슷한 성향의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해냄)"처럼 다 읽고 난뒤 입에 남는 텁텁한 뒷맛은 없다. 아주 깔끔한 전개로 굉장한 재미가 있다.

아주 좋은 소설이다. 묘하게 풍기는 모래의 비릿한 내음까지 번역해준 김난주씨에게 감사할 따름이다.(쏟아지는 그녀의 훌륭한 번역책들을 보면 그녀가 잠잘 시간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화이팅~)

2007. 4. 18. 10:18

추천 소설-오 하느님(조정래,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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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저자 조정래 | 출판사 문학동네 


이분의 소설을 손에 잡을때면 서문을 읽었을 뿐인데도 벌써 '신침이 입에 고이는' 기대가 생긴다. 얼마전 작성하였던 인터뷰 기사의 댓글이 기억에 남는데 '적어도 이 땅에 조정래 선생 한 분 정도는 어줍잖은 논리나 정략으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소설가로 남게 해달라는'는 내용이었다. 당신께서는 지식인이고 투사로서 살아가는 삶을 주저하지 않겠지만 개인적인 소망은 댓글처럼 상처받지 않고 유유자적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 끔찍히 재미있어서 책을 읽다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던져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개인적으로 '아리랑'에서 '공허'스님이 돌아가실때 정말 절망했다.)

책의 내용은 일본의 강제적인 징병에 끌려가 수 많은 전쟁통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남으려는 한 명의 인간이 가지는 절박함을 탄탄한 이야기 속에서 풀어낸다.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이러한 절절함이 느껴지도록 제목을 오~ 하느님(Oh my God~)으로 정했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느껴져 문득 그가 소설가가 아닌 이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목자나 구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역시 그의 길다랗고 구구 절절한 이야기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장편 소설이긴 하지만 너무 짧아서 아쉬움마저 느껴진다. 어서 그가 들려주는 구수하고 절박하며 웃기고 슬픈 그런 길다란 이야기를 읽고 싶다.
2007. 4. 6. 09:34

추천 소설-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공경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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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 세계문학전집 47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 역자 공경희 | 출판사 민음사 



누군가로부터 가벼운 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받거나 지독한 외로움의 잉크가 마음속에 스며들며 차차 손가락 끝까지 까맣게 물들어버리는 날이면 들게되는 책이 있다. 50여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로 부터 미움을 받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면서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책이라 그다지 할 말이 없다.

에니메이션 "공각 기동대-STAND ALONE COMPLEX"에서 이야기 진행의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는 이 책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홀든 콜필드라는 16세 소년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홀든의 깊은 내면과 세상에 대한 인식, 혼란과 세상 모든것에 대한 분노를-그렇지만 누구나 한번씩은 겪게되는- 적나라한 언어로 작성한 이야기이다.

한명의 홀든이였던 나는 이제 홀든이 분노하던 '녀석'들 중의 한명이 되어버렸다고 느끼지만 우울해 지는 날이면 홀든의 까닭모를 분노에 공감하고 그를 동정하면서 나에게 작은 위로를 보낸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웅크린 홀든은 여전히 성장하지 않은 채 세상 모든 것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울고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