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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16. 15:55

추천 소설-농담(밀란 쿤데라, 방미경,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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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세계문학전집 29) 
저자 밀란 쿤데라 | 역자 방미경 | 출판사 민음사


나에게는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마찬가지로 소위 '386'세대라고 부르는 세대들이 가졌던 묘한 '희망'에 대한 동경도 가지고 있다.-두 가지 모두 교육된 것이라고 믿지만 어쨋든 내 안에는 그런 것이 있다.- 다행히 노력한다면 여러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안도하면서 느긋히 이런 소설을 통해 막연한 공포와 동경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시간을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의 저자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으로 '농담'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 닫혀진 이념 사회가 한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멸시키는 과정이 극적으로 적혀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비극은 주인공의 20여년의 동안 철통같이 믿고 신봉하던 신념과 체제로 부터 완전히 배제되고 결국 인생 전체를 '실패'로 채색하게 되는 발단은 3줄의 농담이 적힌 엽서라는 것이다.

책은 7장으로 나뉘어 화자가 바뀌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입장의 주인공들의 시선을 통해 여러 가지 사건이 계속 재해석 된다. 루드빅은 젊은날 자신의 사소한 농담을 빌미삼아 자신을 파멸에 빠뜨렸던 파벨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인 헬레나를 꼬셔내지만-유치하다.- 헬레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그녀 역시 유치한 이유로 사랑에 빠진다.- 게다가 파벨-이놈은 나와 같은 천성적인 기회주의자다. 더럽게 약한놈이다.-은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면서 복수는 더욱 이상하게 돌아간다. 또 다른 종교라는 이념에 사로잡힌 케릭터인 코스트카의 입을 통해서는 루드빅이 절망의 순간에서 보았던 한 줄기 희망이었던 루치에와의 사랑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거대한 폭력이었음을 읇어준다.  또한 자신이 유일하게 애정을-민속음악에 대한 그의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보내는 오랜 친구인 야로 슬라브는 마지막에 루드빅의 품에 안겨 죽는다. 길다랗고 우울한 한 인간에 대한 실패의 서사시가 담담히 읇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 무겁고 우울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루드빅과 루치에의 사랑이야기나 헬레나의 우스꽝스런 자살 소동이나 민속음악에 대한 애정 등이 묘사되는 걸 보면 묘한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란 것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뿔이 달리거나 빨간 옷을 입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TV를 통해 알게 됬지만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이 안된다. 누군가 내 머리 속에서 셔터를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지란 참 강력하면서 우울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