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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3. 2. 17:39

추천 소설-거미여인의 키스(마누엘 푸익, 송병선,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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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여인의 키스(세계문학전집 37) 
저자 마누엘 푸익 | 역자 송병선 | 출판사 민음사 


"...선량한 마음씨가 있다면, 타인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루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량한 마음만으로 충분할까요?"
"이 세계에선…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 드래곤 라자 中 -
자신때문에 위험에 처하게된 동료들을 위해 혼자 길을 떠나는 길시언 왕자를 보고 카알이 이루릴에게 하는말

작가 이영도의 소망은 참으로 소박하지만 모든 소박한 것들이 가지는 감동이 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소설로서도 상당히 실험적이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정확히는 아르헨티나) 작가에 의해 쓰여졌는데다 주인공들의 성향도 상당히 터프하기 때문에 애인의 속옷이 흰색이 아니면 화를 내는 파시스트들에게는 상당히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이해해 보려고 선량한 마음씨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게다가 절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성향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인간적인 애정으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이 나오기 때문에 선량한 마음씨와 인간관계에 대한 이영도님의 생각은 썩 잘어울린다.

이 소설은 소설로서는 특이한 점이 너무 많아서-나의 좁디 좁은 독서 범위 안에서긴 하지만-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은 3명뿐이다. 게다가 소설 전체가 인물들의 대화로만 구성된다. 주인공은 이야기를 잘 하다가 토라져 얼버무리기도 하고 두 세가지 주제를 동시에 이야기 하기도 하기 때문에 독자는 친구와 대화할 때 처럼 이 것 저것을 잘 챙기며 소설을 읽어 나가야 한다. 또한 주인공들이 잠을 자거나 무엇인가를 하거나(?) 하면 "... " 형식의 여백을 마련해 시간의 경과를 나타낸다. 그리고 미처 몰랐지만 중간에 나오는 소설의 이해를 돕기위한 동성애에 대한 각주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는 전지적인 작가님이 내려와 주인공의 상태나 심리를 말해주는 대신에 영화의 나래이션 비슷한 이탤릭 채의 글들이 틈틈이 튀어나온다. 이러한 특징들은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를 먼저 쓰기 시작했고 소설을 나중에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의 경계같은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주인공인 몰리나는 이반적인 사람으로 중간 중간 몰리나가 생물학적인 남성임을 지칭하는 대사가 없다면 완벽히 섬세한 여성으로 생각될 만큼의 개성을 보여준다. 발렌틴은 전형적인 혁명가로서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설사 그게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상당한 금기로 치장한 우리의 캐릭터들은 감옥이라는 극한의 배경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점차 서로를 받아들인다. 발렌틴은 끊임없이 몰리나를 냉소하고 비웃지만 결국 몰리나의 자상함에 자신의 약한 모습을 털어놓게 되고 몰리나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발렌틴을 적당히 이용하지만 결국 발렌틴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을 위해 작가가 선택한 도구는 영화이야기 이다. 역시 상상력은 애정을 싹트게 하는 것이다.(지구상에 수많은 연인들이 지치지도 않고 주말에 영화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것이라고 굳게 생각하고 있다... 할일도 없고 모텔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밝아서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슬프잖아.....)

결국 작가는 굳건한 금기나 체제, 사상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이 인간들은 애정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조금씩 벽은 허물어 질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그 사이에 인간과 영화가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작가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정말 대단한다. 역시 호환마마보다 한편의 영화가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나 보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주인공같은 아웃사이더들의 소통만으로 세상이 좀 더 전진하리라는 찬란하고 눈부신 희망따위를 던져주지는 않는다. 그져 이어짐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인색하다.

상당히 재미도 있고 독특한 소설이다. 그래서 인지 슬슬 검색해 보니 영화와 뮤지컬로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물론 나같이 반 은둔형아웃사이더인 사람에게는 요행이 손에 들어온 것이지만 말이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믿음사)"도 상당히 괜찮아서 인지 다른나라 작가들의 이야기에도 조금씩 관심이 생기고 있는중이다.
 
"나는 성에 있어서 음성적이고 터부시되는 모든 것을 탈신비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 - 마누엘 푸익